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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힘들다.
나도 힘들고 회사도 힘들다.
입사만 하면 이직 걱정 할 수 없이 다닐 줄 알았는데...... 아침에 눈 뜬 후 새로 뜬 공지를 확인해 보니 올해는 비상경영체제로 간단다.
내가 힘이 들어도 다같이 힘을 낸다면, 다 같이 열심히 일을 한다면, 다 같이 으쌰으쌰 한다면 상관없다.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힘을 얻기도 하니까... 근데 우리 회사는 아니다. 쉬바 열심히 하는 사람만 열심히 해........ 정말 현타가 세게 왔다.
길을 잃어버렸어~~~ 울고 보챌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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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행동은 짙은 확신과 깊은 신뢰를 만들어준다. 지속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장의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롯이 상대방에게 내 모든 것을 맡겨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앞서 말한 일관된 행동을 계속 느끼고 보고 싶다면 그것의 대상인 '나'도 당연함이 아닌 감사함으로 대해야겠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여 그것이 어느 순간 익숙해져 호의가 아닌 권리로 인지하고 있다면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의식하고 행동해서 그렇지 아니한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이 아닐까. 허나,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큰 것부터 작은 소소한 것들까지 어느 하나라도 언젠간 변할 것이다. 그때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달렸겠지. 잃어버린 상대의 일관성을 찾을 수만 있다면 온몸에 흙탕물을 묻혀서라도 잡아낼 거다. 안 잡힌다면 포기도 할 줄 알아야겠지. 때로는 빠른 포기가 시간을 벌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라는 말은 누가 생각해낸건지 모르겠지만 참 좋은 말이다.
오랜만에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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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은 기쁨, 나머지 절반은 슬픔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신기하리 만치 수식으로 딱딱 떨어져 맞는 우주의 이치처럼, 무더운 여름과 매서운 겨울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내 기쁨과 슬픔도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인생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남들에게는 익숙할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 내겐 펼쳐지지 않았다. 가족끼리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티비를 보거나, 맛있는 곳에서 다 같이 외식을 한다든가, 풍경이 좋은 곳으로 함께 여행을 가는 것까지. 그것들은 그저 내게 항상 환상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여기에 더해 명절마다 삼촌댁 거실에서 다 같이 떠드는 것과 좋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며 기억해두는 일도 이젠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렸기에 슬픔은 기쁨을 넘어 완전히 덮어버렸다. 언젠가 친구들끼리 모여 삼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이제껏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무덤덤해하던 내가, 그저 장난스럽게 늙었다고 웃으며 말하던 내가 그렇게 미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이런 슬픔은 찾아오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은 하루 이틀을 넘어 지금까지 뼛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내 삶이 가장 빛나던 순간은 내 뒤에 엄마라는 조력자가 있었을 때였고 그 빛은 보석과 다를 바가 없었겠지만 반짝거리는 빛을 잃은 보석은 더 이상 보석이 아니다. 겉으로는 단단한 척을 하고 있지만 이미 속은 물러 터져 버렸고 바깥으로 새어 나오려는 그것을 간신히 틀어막고 있다. 슬픔이라는 두 음절의 가치는 본질을 넘어버린지 오래고 기쁨이라는 단어가 제 뜻을 찾는데는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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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제 엄마는 평생 모르게 된 내 거짓말을 알려줄게!!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작년 이맘때쯤에 다친 넷째손가락에 관해서야. 속에 뼈가 보일 정도로 심하게 다쳤었는데 차문을 닫다가 껴서 다친 거라고 했었지만 사실은 일하다가 중량물에 깔린채로 기계 사이에 껴서 그런 거였어. 목장갑이 빨갛게 물들 정도로 피가 많이 났지만 퇴근할 때까지 누구한테도 얘기도 못했었고 다음날, 다다음날까지 피가 멎지 않아서 결국 병원에 갔었지. 예쁜 손가락이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났던 넷째 손가락이었는데 이젠 아니야.
음 두번째는 비트코인, 주식에 투자했던 돈. 엄마는 잃어도 속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하라고 했었지만 사실 조금은 속상할 정도로 했어..ㅋ 누군가한텐 적은 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ㅋ
그리고 담배 언제부터 폈냐고 물어봤을때 얼마 안됐다고 했었잖아. 군대에서 시작했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러다가 전역하고 끊었다가 대학교 3학년쯤 프로젝트랑 과제의 압박으로 학교-알바-집이 반복되는 하루에 너무 지친 나머지 다시 찾게 되더라.
넷째는 내가 군생활 별 탈 없이 잘 한줄 알았지? 사실 나 맞선임이랑 별로 안 좋았어. 야구선수 출신의 4살 위. 걔한테 욕도 많이 먹었고, 꽤 많이 맞았어. 내 맞후임들까지 건드려서 내가 신고를 했더니 군 내부로 끝낼 사안이 아니라고 꽤 심각하게 돌아갔었어. 근데 그 맞선임이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하길래 마음이 약해져서 봐줬는데 얼마 안 가서 또 똑같아 지려 해서 나도 똑같이 행동했더니 결국 나한테 티비 셋톱박스 던지고 멱살 잡았어...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도 열 받아서 안쫄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니깐 주먹으로 벽을 엄청 세게 쾅쾅 치더라.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해~~ 무섭거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생에 가장 바보 같은 짓이야. 엄마가 떠나기 바로 전날. 엄마도 천안에 있는 이모댁이었지? 나도 전화로는 청주라고 했었지만, 사실 천안에 있었어. 그래서 엄마도 볼 겸 이모댁으로 갈까 하다가 안갔거든. 난 정말 바보야. 죽어도 할 말 없을 만큼 바보야 나는.
거짓말한거 다 얘기했으니까 빨리 잔소리 하러 돌아와주라~~~ 너무 보고싶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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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가리지 않고 정말 아무 노래나 틀어놓고 다른 짓을 하는 것, 걸음과 동시에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밤하늘의 별 개수를 세는 것, 좋은 곳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외 수많은 것들까지. 이제는 그 무엇도 내게 평범하지 않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글썽임과 그것을 참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과 티를 내지 않는 방법을 위한 나름의 연구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시간의 흐름을 잡기는커녕 놓치기 일쑤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추운 겨울 미리 켜진 장판으로 데워진 침대에 들어가 꽤 묵직한 이불을 덮는 것이 내 최고의 행복이었는데, 그 행복은 끝내 '회피'가 되어버렸다. 왜 이런 모진 일은 내게 일어날까라며 신을 원망해보기도 하지만 애초에 신이 존재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이내 한숨만 내쉰다. 혼자 보내는 밤이 이제야 익숙해졌는데 요즘은 길게 느껴지는지 시계를 보는 횟수가 늘어난 것 같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거기서는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겠지.
아 그리고 담배가 늘었다. 솔직히 많이 피지 말라는말, 줄이라는 말 때문에 신경 쓰고 있었는데 이제 그 말을 떠올리기가 싫어졌거든.
끝.